한국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70개국 중 2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1997년 평가 대상에 처음 이름을 올린 이래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성적표다. 인구 5천만 명,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웃도는 이른바 ’30-50 클럽’ 국가들 틈에서는 미국(10위)의 바로 뒤를 이어 당당히 2위를 꿰찼다. 독일(23위)이나 영국(24위), 일본(30위)을 모두 제친 결과다.
순위 상승을 견인한 쌍두마차는 기업 효율성과 인프라였다. 기업 효율성 부문은 무려 10계단을 뛰어올라 34위에 안착했고, 인프라 역시 15위로 선방했다. 특히 과학 인프라는 세계 2위라는 견고한 경쟁력을 입증하며 체질 개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노동시장, 금융, 경영 관행 등 비즈니스 생태계 전반에서 긍정적인 지표가 도출된 것은 분명 고무적이다.
하지만 거시적 지표가 뿜어내는 훈풍이 밑바닥 경제까지 온전히 닿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IMD 평가 항목 중 유일하게 뒷걸음질 친 대목이 바로 ‘경제 성과’ 부문(11위→14위)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상반기의 지독한 경기 침체 여파로 2025년 연간 실질 GDP 성장률이 1.1%에 머물렀고, 고용과 물가 등 서민들의 살림살이와 직결된 지표들이 일제히 하락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민들이 체감하는 살림살이의 민낯은 한국경제인협회가 내놓은 ‘2026년 국민 소비지출계획 조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언뜻 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54.8%)이 “올해 씀씀이를 늘리겠다”고 답해 내수 회복의 불씨가 살아나는 듯 보인다. 가치관이나 생활환경의 변화, 취업에 대한 기대감이 이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 소비 심리를 소득 수준별로 쪼개어 보면 철저히 ‘K자형 양극화’의 형태를 띤다. 소득 상위 60% 계층은 기꺼이 지출을 확대하겠다는 반면, 하위 40%는 오히려 허리띠를 더 단단히 졸라매겠다고 답했다.
특히 소득 최하위인 1분위 계층에서는 무려 60.3%가 씀씀이를 줄일 것이라 예고했다. 이들을 옥죄는 가장 큰 공포는 턱밑까지 차오른 고물가(29.2%)와 혹여나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실직의 우려(21.7%)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고소득층에게만 맴돌고, 취약계층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는 방증이다.
가장 큰 뇌관은 응답자의 44.1%가 지목한 ‘고환율과 고물가의 장기화’ 현상이다. 세금과 공과금 청구서는 매달 묵직하게 날아들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 부채는 민간 경제의 활력을 조용히 갉아먹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비를 늘리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조차 실제 지출할 수 있는 ‘주머니 사정’은 턱없이 가볍다. 10명 중 4명(41.2%)이 소비 여력이 부족하다고 털어놓은 반면, 여력이 충분하다는 응답은 8.3%에 불과했다. 소비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는 시점 역시 올해 하반기 이후, 혹은 내년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유보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국가경쟁력 21위라는 타이틀이 서민들의 팍팍한 장바구니 물가까지 구원해주진 않는다. 화려한 순위에 취해 지표가 만들어내는 착시 현상을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이 꼬집었듯, 지금 필요한 것은 소득공제 확대나 개별소비세 인하처럼 당장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줄 수 있는 직접적인 수혈이다. 나아가 대형마트 규제 철폐 같은 해묵은 유통구조의 혁신이 맞물리지 않는다면, 내수 진작은 결국 일부 계층만의 리그로 남을 공산이 크다.